한문학자 장유승의 길에서 만난 고전 : 2012년 7월 20일

우리나라 사람들, 유독 죽겠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아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가난해 죽겠다. 정말 죽을 지경에 놓인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엄살입니다. 죽겠다는 표현의 유래는 오래되었습니다. 19세기의 선비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의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의 말에는 과장이 많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데다 흉년이 들어 아침도 저녁도 먹지 못하니 필시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잠시 후 그의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 아들에게 좋은 혼처가 있는데, 내가 권유하면 혼사가 이루어질 것이네. 
하지만 자네 가 몹시 가난하다니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가난하기는 하지만 가족들을 굶주리게 할 정도는 아니라네.”
그리고는 가난하지 않다고 장황하게 말한다. 앞서는 가난해 죽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돈이 많다고 하니, 망령된 말이다. 지금 사람들의 말은 대개 이와 같다.

가난해 죽겠다고 엄살을 피웠는데, 상황이 바뀌자 말을 뒤집으니 구차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하면 나중에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가난해 죽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다시 윤기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말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듣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불쌍하게 여기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업신여길 따름이다. 그러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또 관직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녹봉이 적다고 하거나 빚을 많이 졌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나는 차마 이런 꼴을 못 보겠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인지 그다지 형편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돈이 없어 죽겠다고 합니다. 대출금 갚고 학원비 내면 남는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가용도 굴리고 외식도 하고 종종 해외여행도 갑니다. 많은 것을 누리는 생활을 당연하게 여기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 죽겠다는 말,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출처 : TBS FM '열린아침 송정애 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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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fe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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