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장유승의 길에서 만난 고전 : 2012년 7월 12일

1904년, 스웨덴의 여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라는 한민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조선에 왔습니다. 조선의 풍속을 관찰하던 아손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여성들이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이름을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집가기 전에는 누구의 딸, 누구의 누이라 불리고, 시집가면 지명을 따서 원산댁이나 서울댁이라고 하거나 아이 이름을 붙여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관습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우리나라 여성에게 이름이 없었다거나 여성을 차별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는 항제법(行第法)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들이건 딸이건 태어난 순서에 따라 성에 숫자를 붙여 부릅니다. 장씨 집 셋째, 이씨 집 넷째라는 뜻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성호사설》에 자세합니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항제법이 없기 때문에 민간의 미천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자식이나 형제자매의 이름을 넣어 부른다. 가령 아들 이름이 갑(甲)이면 갑 아버지, 갑 어머니라고 부르며, 동생 이름이 을(乙)이면 을 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달리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상대방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아빠, 누구 엄마라는 호칭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남녀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는데, 상대방이 여성인 경우는 호칭에 더욱 주의해야 했기 때문에 누구 아내, 누구 엄마라고 부르는 관습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은 여성 차별이 아니라 가족 관계 속에서의 위상을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입니다.


출처 : TBS FM '열린아침 송정애 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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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fe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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