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장유승의 길에서 만난 고전 : 2012년 6월 8일

임진왜란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던 강항(姜沆)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포로생활의 견문을 기록한 《간양록(看羊錄)》이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이분이 3년만에 조선으로 돌아와 고향에 살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농부가 된 이래로 소를 길러본 적이 없었다. 해마다 봄이되면 밭을 갈려고 이웃에게 소를 빌렸다. 이웃들은 내가 너무 자주 빌려간다며 원망했고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남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다 흉년이 들어 쌀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소작으로 받은 쌀로 암소 한마리를 샀다. 이듬해 보릿고개에는 끼니가 부족했지만 마음은 편안하였다. 어느날 소작인이 콩을 가져왔는데 소가 한밤중에 코뚜레를 물어 뜯고는 섬돌 위로 올라가 콩을 훔쳐 먹었다. 그런데 욕심을 다 채울 때 까지 멈추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사흘이 지나자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 나는 노비들이 게을러 제때 여물을 주지 않아 소가 굶어 죽는 것만 걱정했지 배가 터져 죽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야 원래 어리석으니 탓할 수 없지만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데도 배가 터져 죽는 경우가 있다. '시경의 녹봉을 받고도 사양할 줄 모르면 망한다' 라는 말이 있고, '어린 아이의 병은 너무 많이 먹는데서 생긴다' 라는 말도 있다. 이 글을 써서 나 자신의 경계로 삼는다.

소를 너무 귀하게 여기다 보니 항상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 죽지 않을까 걱정했을 뿐, 너무 먹다가 배가 터져 죽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소에 비유하긴 좀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도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보다 소아비만에 걸린 아이가 많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많이 먹고 건강해지기를 바라지만, 먹는 것도 지나치면 좋을 턱이 없습니다.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조기교육도 자칫하면 아이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영어유치원 10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 한 곳이 생긴다는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근심은 항상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생기기 마련입니다.

출처 : TBS FM '열린아침 송정애 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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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fe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