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장유승의 길에서 만난 고전 : 2012년 5월 31일

최근 안전사고가 빈발한 회사에서 고사를 지내며 전 직원에게 절을 하도록 했다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정확히 언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부터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니 오래된 풍속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연말에 새로 빚은 술과 돼지머리고기를 먹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후기의 민간풍속을 기록한 조수삼(趙秀三)의 《세시기(歲時記)》 라는 글을 보면,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술과 떡, 과일 그리고 돼지머리를 차려놓고 땅의 신과 재물의 신에게 비는데, 정해진 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년 내내 그렇게 하였다고 하니 이것이 직접적인 유래가 아닌가 합니다.

요즘도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특별히 돼지머리를 숭배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고사를 지내면 모든 일이 저절로 잘 풀릴 것이라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깊은 의미가 있어서 라기보다는 워낙 오래된 풍습이라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인데 미신이라면 미신이지만 그 의미를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사는 나 혼자 잘되려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여러사람이 합심하고 협력하여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불행한 과거는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의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로가 공동 운명체임을 확인하고 함께 노력하여 역경을 극복하려는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의미가 있더라도 나름의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랜 전통으로써의 의미를 헤아리고 하나의 문화로써 이해하고 포용하는 관대한 모습도 기대해 봅니다.

출처 : TBS FM '열린아침 송정애 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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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fe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