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장유승의 길에서 만난 고전 : 2012년 5월 29일

서울시에서는 지난달부터 보도블럭 공사를 담당한 시공 관계자의 이름을 표지판에 새기는 보도블록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간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새로 깔거나, 새로 깐 보도블록이 금방 손상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실명제를 도입해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함으로써 예산낭비와 부실공사를 막겠다는 것입니다.

보도블록 실명제는 과거 중국에 있었던 벽돌 실명제를 연상케 합니다. 일찍부터 벽돌을 이용한 건축이 보편화된 중국에서는 벽돌 제조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벽돌 표면에 일일이 찍어넣도록 하였습니다. 벽돌의 품질을 엄격히 관리하여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캐나다의 중국사학자 티모시 브룩에 따르면, 명나라 때 건설된 남경성 취보문에 벽돌 실명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는 벽돌공은 물론 이들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관원들의 직책과 성명이 모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건축물에 사용된 벽돌이 넓은 중국 대륙 어느 곳에서 만든 것인지 오늘날까지도 추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벽돌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벽돌 실명제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조총, 환도, 화살 같은 무기류에 소유자의 이름을 새겨넣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무기의 분실을 막고 관리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인데, 그 취지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이름을 새기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착과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작품에 작가의 이름을 써넣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는 농산물을 비롯한 각종 상품에도 실명제를 도입하는 추세인데, 역시 품질의 우수성을 자부하고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보도블록 실명제 역시 부실공사를 막기 위한 방법에 그치지 않고, 시공자가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도록 한다면, 보도블록을 뜯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달라질 것입니다. 

출처 : TBS FM '열린아침 송정애 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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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fe 스토리